Forbidden Castle - Prologue

감춰진 성 안에는 햇살이 비칠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그가 살고 있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성 안에서도 그는 세상의 모든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간혹 성 안의 밀도 높은 공기와 습기 때문에 몹시도 답답해 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얼굴에는 언제나 자상한 아버지 같은 인자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좀처럼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다만 어느 한 때, 마치 해가 지기 전 하늘색이 그렇듯, 세상이 온통 짙은 주황빛으로 빛이 났었던 때, 그래서 그늘이 진 그의 창가가 온통 붉게 물들 무렵, 잠시 창문을 열고 그 모습을 드러냈던 적이 있었다.

변덕스러운 기질을 가지고 있었지만, 괴퍅하거나 얄미울 정도의 변덕은 아니었다. 창가에 내려 앉는 햇살을 사랑했고, 햇살 속에 미끄러져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좋아했다.

그가 살고 있는 성의 모습은 그리 웅장하지도, 거대하지도 않아 보였고, 언뜻 본 사람들은 처음에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지만, 근처 오솔길을 지나 다니면 자주 그 모습을 보았던 사람들은 성 외곽 곳곳에 먼지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는 작은 조각들이나 얼룩진 담장을 보며 이내 친근감을 느끼곤 했다.

성 안 뜰은 성 안에 살고 있는 그처럼,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뒷마당 쪽에는 작고 아담한 연못이 있었는데, 오랜 세월 잘 가꾸지 않아서 물이끼가 많이 끼였지만, 연못 주위로 앙증맞은 돌들이 둥그렇게 놓여져 있었고, 돌틈들 사이로 이름 모를 작은 풀들이 돋아나 연못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연못을 끼고 오른쪽으로는 나무로 만든 작은 아치형 다리가 있었고, 다리 주변에는 정돈되지 않은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마당 곳곳에는 여러 종류의 들풀들과 들꽃들이 각양각색으로 자라고 있었다. 잘 가꾸어진 화단은 아니었지만, 자연이 가꾸어 온 그대로의 모습대로 여러 색깔을 지니고, 계절마다 그에 적합한 꽃들을 피어냈다. 사실 성 안에 살고 있는 그가 아예 정원을 방치해 두는 것은 아니었다. 은은한 햇살이 비치거나, 이른 아침 이슬이 내릴 때 쯤이면, 가끔 정원을 거닐며, 들풀들 사이에 놓여져 있는 큼지막한 돌로 자리잡힌 길들 사이에 있는 잡초들을 조심스럽게 뿌리채 뽑아 다른 곳으로 살짝 옮겨 심기도 했다. 아무리 볼썽 사나운 잡초라도 각기 고유의 모습을 가지고 세상에 존재하는 데, 그것이 존재하는 그 모습대로 지켜보고 싶기 때문이었다.

오랜 세월 그는, 그렇게 기다려 왔다. 있는 그대로의 잡초마저 사랑하는 것처럼, 굳이 세월을 거스르려 하지도 않았고, 삶을 거스르려 하지도 않았다. 단지 언젠가는 잡초에서도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삶의 큰 강물을 거스르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뿐이었다. 그 자체가 바로 약속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약속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된다.
Dev (0.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