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ossum

Opossum

저녁에 베란다에 나가 보니, 베란다 앞에 있는 나뭇가지에 Opossum 한 마리가 앉아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시력이 나쁘기 때문에 아마도 소리를 듣고 내 쪽을 보고 있었을 게다.

문득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누군가 Opossum 에 대해서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물리면 죽는다 는 잘못된 정보와 더불어 기분 나쁘게 생긴 외모 때문에 가끔 밤길에서 마주치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던... 나중에 Wiki 에서 찾아보니, 전혀 위험하지 않은 동물이고, 한 때는 요리를 해서 먹기도 했던 동물이었다. 잡식성에 유대류이고, 매우 깔끔하며, 매우 강한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방울뱀이나 독사에게 물려도 괜찮고, 각종 벌레, 심지어는 바퀴벌레까지 잡아먹어서 오히려 사람에게 유익한 동물이라고 한다.
크기는 고양이만 한데, 뾰족한 주둥이에 긴 꼬리 때문에 생긴 건 꼭 쥐같이 생겼다.

가끔 베란다 뒤 벌판에서 코요테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토끼가 폴짝 거리기도 하고, 다람쥐가 뛰어 다니고, 간혹 엄청 큰 소가 나타나기도 하는... 영락없는 시골에서 사는 게 나쁘지 않다. 예전에 살던 Austin 에서는 사슴이 자주 나타났었는데, 여기서는 아직 사슴을 본 적은 없다.

약간 흐리고 바람이 부는, 하지만 20 도를 훌쩍 넘는 훈훈한 날씨의 토요일 오후, 새로 구입한 Polkaudio 의 Floorstanding speaker 를 앰프에 연결해서, 풍부하고 포근한 음악들을 들으며, 커피와 함께 소파에 기대어 누워 한가롭게 책을 읽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은희경의 '타인에게 말걸기',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그리고 C.S.Lewis 의 '네 가지 사랑'... 재밌다. 언젠가부터 여러 책을 번갈아 가며 읽는 버릇이 생겼다. 어떤 면에서 한 쪽에만 치우치지 않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지루하지도 않고... 책을 읽는 속도가 좀 더디긴 하지만, 충분히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어 좋은 것 같다.

여러 할 일들은 잠시 미루어 두고, 수포로 돌아간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한가로운 토요일을 보냈다. 친구는 그래서인지, 점점 폐인이 되어 가고 있다. 몹시 미안한 마음. 하지만 어쩌겠어? 나중에 또 기회가 오겠지...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뒤바뀌었던 생활도 지난 주에 Austin 에 다녀온 이후로 다시 정상적인 패턴으로 돌아왔다.

한국은 아직 한창 겨울이겠지만, 텍사스는 이제 겨울이 거의 힘을 잃고, 길고 지루한 여름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일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되어 가고 있고, 그렇게 아직은 이른 봄과 함께 텍사스에서의 일상이 시작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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