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진 생명

농섞인 말싸움이 우리 사이를 가볍게 날아서 오고 가지만
그러나 보라! 어인 일인지, 나의 눈에 눈물이 흐르는 것을.
이름 모를 슬픔이 내 가슴에 엄습해옴을 나는 느끼네.
그래, 그렇지, 우리는 알아. 농담을 던질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지, 우리는 알아. 우리가 웃을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이 가슴엔 응어리 남아
그대의 농담도 안식 못되고
쾌활한 미소도 위안 못되네.
그대의 그 손을 내게 맡기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말게나.
그 맑은 두 눈을 내게로 돌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 눈에서 가장 깊은 영혼을 읽게 해다오.

아아! 사랑마저 마음을 열어
속마음을 털어놓게 못하는 걸까?
연인들마저도 참된 느낌을
서로에게 내보이지 못하는 걸까?
사람들이 대개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자기의 생각을 내보였다가
타인들에 의해서 무시되거나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했던 때문이란 것을
나는 알았네.
그들은 거짓 속에 살아가면서 때론 화도 내고 속인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서먹해지고 자신에게마저 서먹해졌다네.
그러나 그들의 가슴 속에는 똑같은 심장이 뛰노는 것을!

그러나 그대여! 우리마저도 가슴과 우리 생각을
그런 속박으로 얽어매놓고 아무런 말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아아! 우리만이라도 잠깐이나마 가슴을 풀어놓고 마음을 열어
허물없는 이야기 나눠봤으면,
우리의 말문을 그토록 심히 잠그어놓은 것은 운명이었다네.

인간은 변덕 심한 아이 같아서
온갖 유혹에 사로잡혀서
온갖 싸움에 뛰어들어서
자기의 본성마저 바꾸는 것을
미리 예견하고 있던 운명이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으며
진실한 자아를 지켜나가고
존재의 법칙에 순응하도록
우리 가슴 깊숙한 마음을 통해
무시된 생명의 강에 명령하여서
알 수 없는 흐름을 진행시켰다네.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그 묻혀진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장님처럼 불안 속에 방황하면서
영원히 그 흐름에 따라만 간다네.

그러나 가끔은 이 세상에서, 가장 혼잡한 길에서라도
가끔은 시끄러운 싸움 중에도
묻혀진 생명을 알고자하는 
알지 못한 욕망이 솟아오른다네.
그것은 우리가 진실하고도 본질적인 생명의 길 추구하면서
정열과 끊임없는 정력까지도 모두 쓰려하는 열망이리라.
우리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그처럼 힘차게 뛰놀고 있는 심장의 신비를 알아내려는,
우리의 생명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가를 알아내려는
알고자 하려는 욕망이리라.
많은 사람들이 자기 가슴을 파헤쳐 보려고는 해봤었지만
아무도 깊게는 파지 못했네. 아아! 내 자신의 가슴마저도.
우리는 이제껏 헤일 수 없이 많은 일들에 종사해왔고,
우리는 모두가 자기 일에서 용기와 능력을 보여왔건만,
그 가운데 단 한 시간도 우리들 자신의 일을 하거나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적 거의 없었다네.
우리들 가슴 속에 흐르는 여러 이름 모를 느낌 가운데
그것들 모두에게서 한 가지라도 표현할 재주를 갖지 못했고
결국은 표현도 되지 못한 채 영원히 지나가 버리고 말아.
우리의 마음속에 묻힌 자아를 말로 행동으로 표현하려고
오랫동안 노력은 해보았지만 모든 일이 다만 허사였을 뿐.
우리의 모든 말과 모든 행동은 설득력도 지녔고 훌륭하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닌 것이라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내면의 투쟁으로 괴로워하지 않고
무수한 시간의 공허 속에서
마취시키는 힘을 요구하리라.
아! 그랬었지, 그 순간들이 요구대로 우리를 마비시켰지.
그러나 아직도 이따금씩은 
영혼의 깊숙한 밑바닥에서 미풍과 떠도는 메아리들이
끝없이 먼 땅에서 솟아나오듯
어렴풋이, 쓸쓸히 우릴 찾아와
우리들의 모든 나날 속으로 울적한 생각들을 실어다 준다네.

그러나 이런 일이 드물긴 해도
사랑스런 손길이 쥐여질 대나
끊임없이 지루한 시간 속에서
소란한 광채로 몹시 지쳐서
타인의 눈빛을 우리의 눈이
분명히 읽을 수 있을 때나
세사(世事)에 귀먹은 우리의 귀를
사랑스런 목소리가 어루만질 때
우리의 가슴 속 어디에선가
빗장이 열리는 소리가 나며
잊혀졌던 감정의 율동이 다시 우리의 마음을 들끓게 한다네.

눈은 안쪽으로 우묵해지고 가슴은 평온하게 가라앉아서 
우리는 뜻한 것을 말하게 되고 우리가 원한 것도 다 알게 된다네.
생명의 흐름을 깨닫게 되면
굽이치는 속삭임도 들리는 거라네.
그 흐름이 흘러가는 풀밭에서는 햇빛과 미풍도 보이는 것.
날면서 달아나는 그늘,
휴식을 끝끝내 잡으려던 열띤 경주에
고요히 쉴 틈이 찾아온다네.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 위로는 서늘한 미풍이 스치고 가며
이제껏 본 일 없는 그런 고요가
그 사람의 가슴을 덮어 준다네.
그러면 그 사람은 생각하겠지.
자기는 그것들을 알고 있다고
자기의 생명이 생긴 언덕과 
그 생명이 향하여 가는 바다를.

-- 독일인의 사랑 중(中)에서...

Dev (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