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르레기 소리 가득한 밤

바람이 불고, 늦은 밤 숲 속에선 찌르레기 소리가 가득하다. 하루 종일 회색빛이던 하늘 때문인지 몸도 마음도 찌뿌둥하기 그지 없었지만, 그윽한 향이 나는 따뜻한 원두커피 한 잔과, 은은한 테이블 램프 밑에 놓인 책 때문인지 어느덧 많이 풀려 있었다.

바람 소리와 찌르레기 소리가 가득할 땐, 아름답기 그지 없는 음악도 소음이 될 뿐이다. 그래서 오늘 밤엔 요즘 듣고 있는 Anael 의 몽환적인 음악이나, Adamo 의 샹송도 틀어 놓지 않았다. 어제 저녁엔 은희경의 소설모음집을 다 읽었고, 오늘 저녁엔 C.S.Lewis의 네가지 사랑의 마지막 장만을 남겨 두고 있다.

전혀 낯선 곳으로 이사 와서 딱히 갈만한 곳도, 만날 사람도 없어, 학교에 가는 일 외에는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소한 일들로 티격태격하던 친구마저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니, 허전하기 그지없다.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나만의 공간과 나만의 시간들로 가득 하지만, 가끔씩 즐기던 일들마저도 지겨워 질 땐, 다시 사람이 그리워 지기도 한다. 오늘처럼 잔뜩 찌뿌린 날에는 왁자지껄한 고깃집에서 친구들과 큰 소리로 떠들며 고기를 구워먹는 게 제 격인데...

이런 저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영화나 한 편 봐야겠다.

Dev (0.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