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ingliness of Friendship

우리는 각자 독립된 나라의 군주로서, 각자의 배경을 떠나 어떤 중립적인 지대에서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가족이나 직업이나 과거나 연고, 하여간 우리에게 붙어 있는 모든 것을 다 무시합니다. 집에서는 우리가 피터나 제인이라는 사실 외에도 잡다한 신분이 따라옵니다. 우리는 남편이거나 아내이며 형제이거나 자매이며 우두머리이거나 동료이거나 부하입니다. 그러나 친구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정은 그런 것으로부터 해방된, 모두 다 벗어 던진 영혼 사이의 일입니다. 에로스에서는 벌거벗은 몸이 만나지만, 우정에서는 벌거벗은 인격이 만납니다.

우정은 우리의 생존에 직접 도움을 주는 가치를 전혀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정은, 우리의 생존을 가치 있게 만드는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치고 네댓 명이 함께 방에 모일 때, 실내화를 놓아 두고 있을 때,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전 세계와 세계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 우리 마음에 밝히 드러날 때, 서로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책임도 없이, 마치 한 시간 전에 처음 만난 사람들 마냥 서로 동등한 자유인으로서 만나는 시간, 그러면서 동시에 오랜 세월 동안 익어 온 애정이 우리를 감싸는 그런 시간 말입니다. 삶에서 이 이상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과연 어느 누가 자격이 있어서 이런 선물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C.S.Lewis The Four Loves, 우정 중에서


시나 문학에 대해서, 혹은 자연이 주는 심미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 고전음악이나 혹은 재즈 선율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C.S.Lewis 가 지적한 것처럼 현대는 이러한 우정이 결핍된 불행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친구보다는 경쟁자가 되기 쉬운 사람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후면 친구 녀석이 한국으로 돌아간다. 어렵사리 미국까지 와서, 지금까지 중 가장 힘든 상황 때문에 어디 좋은 곳 하나 가 보지도 못하고, 집 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돌아가게 되어서 미안한 마음 뿐이지만, 언젠가는 더 나은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같이 있는 동안 좀 더 많은 것들을 나눌 수도 있었을 텐데, 한국 남자의 매력없는 무뚝뚝함 때문인지, 별달리 의미 있는 시간도 갖지 못했다.

"우정은 우리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알아볼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수단입니다... 우정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게 해 주신 것뿐입니다."


사람아, 너의 창조자를 기쁘게 해 드리고, 즐겁게 지내라.
세상에 대해선 심각할 것 하나 없으니.

Man, please thy Maker, and be merry,
And give not for this world a cherry.

- William Dun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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